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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짧고 단순하고 작은 구조를 가진 것들

아주 단순한 구조의 시 「호박」을 보자. 영화 「패터슨」에 나오는 주인공이 쓴 짧은 시다.

Pumpkin

My little pumpkin,

I like to think about other girls

Sometimes,

But the truth is

If you ever left me,

I'd tear my heart out

And never put it back.

There'll never be anyone like

you.

How embarrassing.

호박

귀여운 내 사랑,

나는 다른 여자들 생각을 해

가끔씩

그러나 진실은

혹여라도 당신이 나를 떠난다면

나는 내 심장을 뜯어내어

다시는 되돌려놓지 않을 거야.

당신 같은 사람은 절대 없을 거야.

정말 쑥스럽군.

이 시가 좋은 이유는 구조의 단순함과 간결함이 커다랗고 절박한 진실을 더 진실한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외따로 있었다면 소화가 어려웠을 터다. 진실을 한번 더 진실로 만드는 것. 그것은 앞뒤로 배치된 작은 속임수-진실, 그리고 빠져나감이 주는 거리감으로 가능해진다. "네가 나를 떠난다면 나는 심장을 뜯어내어.... " 홀로 있다면 무척 통속적이고 과장되어 납득하기 어려운 문장이다. 그런데 가끔 다른 여자들을 생각한다는 용서할 정도의 가볍고 사소한 속임수-진실이 앞에 있기 때문에, 그가 진정 말하고 싶었을 커다란 진실이 중간에서 진실로 존재할 수 있다. 진실을 고백하고 나서 쑥스러운 듯 빠져나오는 가벼움이 끝에 한 번 더 배치되어 있기에 절박한 진실은 훼손되지 않고 힘을 얻는다.

 

​내가 좋아하는 또 다른 구조는 짧은 반복과 나열에서 발생하는 시차이다. 그것은 평화와 평화, 사랑과 사랑... 같이 a와 a, b와 b라는 형식의 제목이다. 이를 가장 짧은 구조라고 한다면, 나열이나 반복에서 생기는 시차가 앞뒤 것이 같지 않은 느낌을 주는 게 재미있다. 같은 단어라도 말이다. 그냥 그렇게 거의 닮은 단어들이 여기 같이 있다는 것은 이상한 긴장을 준다. 단순한 조작이 주는 훌륭함 가운데 하나다.

 

​마지막으로 좋아하는 짧은 구조의 시 두 편을 보자. 하나는 읽어나가는 행위가 가지는 순서 때문에 속절없이 속게 되는 장난스러운 구조다.

김유림의 시 「갑작스러운 산책」 전문을 보자.

난 풀어헤쳤던 외투를 얌전히 매듭지었다. 거기에 끈이 달려 있다면 말이다.

시를 읽은 우리는 한번 매듭진 외투를 가졌다가 잃는다.

혹은 없는 끈으로 묶은 외투를 갖는다.

어이없고 이상하고 조금 즐겁다.

다른 하나는 아무것도 교환하지 않는 것들이 나란히 있는 구조다.

김유림의 시 「죽음과 티코」 전문을 보자.

티코는 검은 초콜릿에 싸인 바닐라 아이스크림이다.

티코에 대한 간명한 설명으로 끝나는 시는 제목과 교환되며 의미가 교란된다. 죽음의 어두운 이미지 때문에 초콜릿과 죽음을 같게 볼 수도 있지만, 나열은 비유가 만드는 동일시를 불가능하게 한다. 우리는 티코에 대한 설명을 갖는다. 티코는 아이스크림이다. 그리고 그 옆의 죽음도 갖는다. 그냥 나란히 있고 그냥 같이 있다. 우리는 아이스크림과 죽음을 갖는다. 이게 무엇일까? 설명된 것과 설명되지 않는 것들이 그냥 같이 있다. 어리둥절하고 이상하고. 그냥 나는 이런 것들, 있는 그대로가 주는 이상함들이 재미있다. ​설명하고도 해결되지 않은 무엇이 시편에 남아 있다. 모순과 있는 그대로를 통해서. 나는 이것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

왜 이런 게 좋다고 말하고 싶었냐면 요즘 구조와 형식에 대한 생각이 많기 때문이다. 나는 단순한 조작이 만드는 아름다움과 재미를 좋아한다. 나는 의미화되지 않는, 서사에 빨려 들어가지 않는, 어느 곳으로도 이어지지 않는 장면이 주는 자유로움에 늘 마음을 쏟았다. 서사화되지 않는 것.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늘 좋았다. 그것은 어떤 구조와 함께할 때 성립 가능한 무엇이다. 작동 방식이 좀 다르지만 「호박」에 나오는 중간의 진실이 홀로 설 때 힘을 얻기 어려운 듯 말이다. 포섭되지 않는 잔여를 더 진실하게 만드는 것도 혹은 그 진실과 상관없이 보이거나 드러나게 하는 것도 구조나 형식이 가능하게 한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을 설명하고도 해결되지 않는 무엇이 내게는 중요하다. 때때로 우리는 구조로 인해 혹은 구조가 있기에 상관없는 것들을 본다. 구조가 있다. 그리고 바람과 구멍이 있다. 바람이나 구멍은 구조를 해체해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구조로 인해 혹은 그것과 상관없이 보이는 어떤 것에 가깝다. 그러니까 어떤 모호함은 건축적이고 구체적인 구조로 인해 다가갈 수 있거나 선연해진다. 이런 것들이 무섭고 아름답고 재미있고 좋다. 구체적인 손으로 움켜쥐고 이내 빠져나가는 모호함이 좋다.

 

모든 것을 이해하게 된 후에도 여전히 남아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존재한다.*

 

이런 것이 좋다. 늘 마음을 쏟게 된다.

* 강보원, 「영화에 대한 것은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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