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과 마음
체스터 브라운의 만화『너 좋아한 적 없어』(2002)의 장면이 종종 떠오른다. 특히 그 만화에서 크래커를 먹는 장면이 좋다. 크래커를 집어서 먹는 칸이 한 면 전체에 하나, 둘 정도 떠있는데 크래커를 씹는 시간은 그토록 길 수는 없을 텐데도 칸과 칸이 벌어져 있어서, 이상하게 비틀리고 집중되거나 한없이 늘어진, 물끄러미 바라보는, 깨물고 조각내게 되는 시간을 생각하게 했다. 시간과 과자가 겹쳐 보였다. 크래커-시간?
이 장면에서 느껴지는 한 순간의 고요함, 외로움, 연결에 대한 감각은 친구 <코니>와의 <들놀이 시간>으로 이어진다. 좀처럼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 그들은 다른 아이들이 그들을 찾을 때까지, <들놀이 시간>에서 만큼은 뭔가를 나누게 된다.
<들놀이를 할 때면 난 코니가 정말 좋았다. 들놀이를 안 할 때는 그렇게 좋지 않았다. 코니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난 확신했다.> 캡션*
<들놀이 시간이 아닐 때는 너를 좋아하지 않지만, 그 시간에서 만큼은 좋아할 수 있었다>는 이 장면은 조건부로 떼어진 시간과 공간에서 깊게 이어질 수 있는 순간들을 생각나게 했다. 두 장면은 떨어져 나와 그것을 물끄러미 바라보게 할 때의 유리된 감각, 분리되고 이어지는 감각을 보여 준다. 그 위치에서 짚이고 보여지고 만져지는 것들에 대한 어떤 종류의 쓸쓸함을 체스터 브라운은 잘 이해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어떤 시간을 다른 시간과 다르게 만드는 것, 혹은 시간 자체를 과자처럼 만들어 보는 것, <들놀이 시간> 처럼 어떤 놀이와 같은 규칙과 제약 안에서 가능해지는 감정의 양식들을 자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형식이 만들 수 있고 가능하게 하는 것들에 대한 생각을.
형식에 관해 내가 아주 좋아하는 장면이 하나 있다. 장 주네가 장 자크 포베르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일부이다.
<(...)한 젊은 작가가 공원에서, 5, 6명의 개구장이들이 전쟁놀이하는 모습을 보고 얘기해 주었네. 아이들은 두 편으로 갈라져 그때 막 공격을 하려고 했었네. 밤이 찾아온다고 아이들은 얘기했어. 그러나 하늘은 환한 대낮이었네. 그래서 그 아이들 중의 하나가 <밤>으로 결정되었네. 가장 나이 어리고 가장 약한 아이가 자연의 구조물이 되었는데, 그때 그는 <전투>의 지배자로 바뀌었네. 그는 곧 <시작>이며 <순간>이며, <불가능한 것>이 되었던 것이네. 얼마 후 멀리서 그가 왔네. 천체의 순환처럼 냉정하게 그러나 일몰의 우수와 영화에 의하여 무거워진 기분으로. 그가 다가옴에 따라 다른 사람들, 즉 인간들은 점점 불안하게 되었네... 그런데 그 아이는 그들의 형편으로는 너무 빨리 왔던 것일세. 그는 자기 자신보다 빨랐다는 얘기가 되네. 전원 일치로, 양쪽 편의 대장도 <밤>을 없애기로 결정하고 <밤>은 다시 한쪽 진영의 병사에게로 돌아갔다네......연극이 나를 매료시킬 수가 있다고 한다면 다만 이런 형식뿐이라네.>
가장 어리고 약한 아이에게 <밤>이라는 형식을 붙여둘 때 아이는 그 자신 이상으로 초과되어 어떤 아름다움과 힘을 전개한다. 형식을 덧입고 나면 이전과 다른 무엇이 되고, 그것이 무언가를 초과해서 꿰뚫고 나올 수 있다는 것. 나는 자주 이런 것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나 형식에 대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런 것들을, 무언가를 뚫고 헤집고 튀어 나오는 것들을 자꾸만 갖고 싶고 보고 싶었다.
최근에는 기억이나 마음에 형식을 붙이는 일을 생각했다. 기억이나 마음은 시간 속에서 쉽게 허물어지는 약한 구조물들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어떤 마음은 그를 가다듬는 형식이나 제약 속에서 가능해진다. 형식과 마음이 교환되고 이어지는 자리를 생각했다. 형식이 기억이나 마음을 감쌌을 때 그것은 오래 유지될 수 있을까? 형식이 일종의 의지라면, 어떤 것이 시간을 뚫고서 기억이나 마음을 장소로 만들어서, 그곳으로 계속해서 되돌아갈 수 있게 만들 수 있을까?
그렇게 하고 싶은 장면 하나가 있다. 아주 커다랗게 느껴지는 이별을 몇 주 앞둔 어느 날, 편집부 팀원들과 자주 가는 <명필름> 카페의 테이블에 팀원들은 별로 많은 말을 하지 않은 채로 둘러 앉아 있었다. 나는 우리가 함께 할 수 있었던 것들이 그렇지 않게 된 것을 받아들이려고 힘을 줬다 뺐다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머털> 이라는 이름의 우유를 탄 것 같은 털빛을 가진 약간 웃긴 개가 테이블 옆에 누워 있었다. 개가 한곳을 바라보고 누워 있으면 꼭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인다. 머털이는 아주 오랫동안 기다려온 것처럼 앉아 있는 것 같았고, 무언가를 기다리는 건 무언가를 믿는다는 것과 같은 것 같다는 생각을 개의 옆모습을 보면서 하게 되었는데......그러니까 무언가를 기다리면서 이렇게 시간을 흘려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이서영 편집자가 불쑥 말했다. 시간을 멈춰 주세요! 이람 편집자가 말했다. 제가요? 지금요? 그리고 다 같이 대답했던 것 같다. 네.
나는 어떤 장면을 여기에 멈추고 놓아 보았다. 아마도 이 장면을 글 속에 놓아 두면서, 나는 이를 되돌아올 수 있는 장소로 기억을 놓아 두겠다는 의지를 떠올렸던 것 같다. 기념사진을 두르는 액자 틀이 떠오른다. 액자 틀은 깃털이나 줄기로 이루어진 잎사귀 같은 것들이 많고, 부드럽고 여린 것들을 견고한 황동, 철, 금으로 입혀 놓는다. 형식을 보면 그렇게 하기로 결정한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보게 된다. 형식과 마음이 이어지고 교환되고 만드는 것처럼. 틀을 보면 자신이 가진 몇 없는 드물고 귀한 것들로 내용물을 둘러싸 놓겠다는 것처럼 보인다.
편집부 팀원들은 곧 이별을 앞두었지만, 언젠가 팀원들과 지금과 같은 형식이 아닌 다른 것으로 만나서, 형식 속에서 가능한 무언가를 나누고(마치 <참깨 통신>이 그랬던 것처럼), 그 시간들은 우리가 알던 것들을 초과해서 우리를 놀라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런 것들을 기다리면서(머털이처럼)...... 기대와 믿음이나 하여튼 온갖 내게 남은 귀한 것들로 만든 줄기 잎사귀로 감싸 장면을 수선한다. 그럼 잠시 안녕히!